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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NUT BUTTER/게임

210929:: Röki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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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미게 밀기 프로젝트 첫번째가 된 로키. 스칸디나비아 지역 전설을 모티브로 한 게임으로 우리에게는 북유럽 신화가 좀 더 친숙하겠다. 북유럽 신화에 관한 지식이 뒤떨어지는 현실이 아쉬울 일은 잘 없었는데, 위그드라실에서 파생된 뿌리 모양의 포탈덕에 신화를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이 게임을 더 즐길 수 있었을텐데 싶었다. 그만큼 기존의 신화를 재구성하여 스토리와 엮는 실력이 탁월했다. 

 

 작중 내내 토베의 목표는 동생인 라스를 되찾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 중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극복해내고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해졌다. 토베의 가정은 어머니의 상실을 시작으로 알음알음 무너져 갔다. 토베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버지가 물려준 어머니의 유품을 전부 우물 바닥으로 던져버리는가하면 아버지는 슬픔에 잠겨 자식을 돌봐야하는 부모의 의무를 져버리고 술에 취해 잠만 자기 일쑤였다. 물론 그때 토베의 나이를 생각하면 장녀에게 모든 걸 떠맡긴 아버지의 죄가 조금 더 크지 않나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토베는 아버지와 라스를 받아들인다. 가족이기 때문에, 그리고 유품을 던진 자신의 실책을 아버지가 뒤집어쓰고 원망을 묵묵히 감내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 잘못된 것일리 없다는 토베의 말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다. 설령 토베가 자신의 동생을 위해 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숲속에서 수호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도와주면서 토베 자신도 성장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은 세상을 좀 더 바르게 이끄는 일이자 자신의 성장을 함께한다는 말이 아닐까.

 

 3장에서 자식들을 구하러 온 헨릭과 토베를 바꿔가며 퍼즐을 푸는 방식은 이 게임이 전달하고자하는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 그리고 협동을 잘 드러냈다. 토베 한명이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거라고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무너진 집에서 정신을 차리고 토베와 라스를 부르며 숲을 넘고 호수를 건너 성에 도달한 헨릭의 합류는 긍정적인 의미로 소름이 끼쳤다. 이만치 모티브가 되는 신화를 잘 유지하면서 전달하고자하는 주제를 시스템적으로 구축해낸 게임이 있었던가. 3장의 맵은 길치와 방향치인 내 입장에서 조금 힘들었지만, 둘의 협동에서 묻어나오는 사랑에 애틋해진 것도 사실이다.

 

 결국 토베는 많은 이들을 구하며 얻은 진실로 거짓을 타파하여 로카의 마수를 뿌리친다. 그리고 장녀로서 많은 것들을 짊어지느라 힘들었을 토베가 왜 그리 라스를 외치며 구하려하는지 보여준다. 이미 스러져버린 생명 속에 피어난 경의. 토베에게 라스는 남동생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남긴 유산이었다. 토베는 이를 다시 상기하고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남기면서 더 이상 무너져버린 가정에서 살지 않겠다고, 당신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가족을 바로세우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한 것 아니었을까.

 

 우수한 그래픽과 BGM, 그리고 스토리를 겸비하고 있지만 모든 게임이 완전무결할 수는 없듯이 이 게임 또한 나름의 단점이 있다. 일단 키가 너무 불편했다. wasd로 움직이고 쉬프트로 뛰며 엔터로 스크립트를 넘기고 I로 아이템 창을 J로 저널 창을 연다. 후에 가서는 전환키로 스페이스바가 추가되며, 아이템을 쓰려면 I로 가방을 연 다음 원하는 아이템을 엔터로 꾹 누르고 wasd로 원하는 곳에 끌어둬야한다. 시점 변화도 썩 우수한 편은 아니다. 어느 특정 부분을 지나면 자기 마음대로 카메라 위치를 바꿔 시점을 변경하는데 덕분에 도달하고자하는 곳으로 가다가 시점이 변환되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꺾여버린다. 플레이야의 시야를 가리는 물건들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엔딩을 본 이유는 마우스 좌클릭 버튼이 엔터를 대신한다는 깨달음 덕이기도 하지만, 토베가 마주할 결말이 어떨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연코 장담하건대, 이 게임은 불편한 키와 시점 변환을 차치하고서 할 가치가 있다.

 

총 플레이 타임은 10시간, 도전 과제를 전부 모으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지껏 편모가정의 아들은 불량배 설정을 받는 한편, 편부가정의 딸은 가정의 모든 걸 짊어지는 설정을 받은 걸 너무 많이 봐왔던지라 아직도 헨리가 용서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족의 잘못과 실책을 용서하고 살듯이 토베 또한 자신의 잘못을 짊어지고 헨리를 용서하기로 한 건 아닐까.

 

 칼로 많은 상황을 무찌르고 대범하게 등반하여 길을 뚫는가 하면 많은 이들을 도우며 당당하게 "누군가를 구하는 게 잘못된 일일리가 없다"는 말을 남겨준 강인한 토베가 굉장히 인상깊고 그의 성장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게임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수호신들도 그들이 신에 필적하는 존재들이지만 완벽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줘 좋았다. 이미 떠나버린 사람을 가슴속에 품고 나아가기로 한 강인한 토베여,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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