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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NUT BUTTER/글

【221213】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나만이 아는 나의 길고 다채로운 역사 속에서 나는 남의 입으로 함부로 요약될 수 없는 사람이며, 미안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행복하다."

- p.86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막연하게 바라는 삶이 있다. 비혼인 채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같은 동네에 살거나 같은 단지에 사는 것. 나는 집안에 인기척이 있는 걸 좋아하니 마음 맞는 사람을 룸메이트로 들여 즐겁게 사는 것도 재밌겠다. 그러면 인생이 정말 즐거워질 거 같았다. 남의 사랑 이야기는 괜찮지만 내 연애에는 큰 관심이 없고, 누군가가 욕망하는 대상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음을 깨달은 이후부터 내 삶의 방향은 오직 그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아꾸랑 샤미처럼 인간 친화적인 반려 동물과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둘이 오래오래 살아 그때도 함께하면 더더욱 좋을테고 말이다. 그런 내 삶을 이룬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을 쓴 김하나 작가님과 황선후 에디터님이다. 

 

 에세이를 왜 읽는지 이해 못할 때가 있었다.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재밌게 읽었음에도 그랬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기 때문에 에세이라기 보다는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해 쓴 책 같았고, 다른 이의 삶으로 무언가를 얻기에는 힘들 거 같았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무언가를 얻은 것 자체가 에세이의 쓸모이거늘.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하지만 다산다난한 삶을 함께 헤쳐나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에세이는 비문학이지만 문학과 결을 같이한다는 점을 알았다. 내가 이루고픈 삶의 방향을 자신의 경험을 곁들어서 좀 더 인간적이고 따스하게 제시해주는 것이다. 같은 비문학에도 지식보다는 지혜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았을 때, 얼마나 신이 나던지. 그 사소한 깨달음이 나를 한단계 더 올려준 기분이었다.

 

 많은 사랑 이야기를 접하지만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나는 사랑보다는 우정을, 애인보다는 친구를 택할 것이며, 실제로도 그 소중하지만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관계가 좋다. 누군가의 유일이 되거나 그 삶을 책임 진다는 건 나 자신도 못챙기는 나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다. 나에게는 대단해보이는 그런 길을 택한 사람이 있으면 나같은 사람도 있다. 이토록 삶의 모양은 제각각이고, 추구하고자하는 방향도 다르다. 애초에 이 지구에 약 80억이 있다는데, 그걸 하나로 뭉치고 그것이 '정상'이라며 강요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아닐까. 어서 빨리 생활 동반자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 책을 보고 그 마음이 더 절실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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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나는 혼자라서 못 하는 일이 있는 게 싫어서 뭐든 혼자서도 해왔고 또 꽤 잘 해 왔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에는 여럿이 해야 더 재밌는 일도 존재한다는 걸.

 

p.38) 남의 일인데 어째서 맡겨놓은 듯이 계획이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걸까? 결혼 하지 않은 여성들은 어리고 만만하다는 이유로 종종 이런 주제 넘은 참견의 대상이 된다.

 

p.85)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는 게 내 가치를 높여주거나 기분을 낫게 해주지 않으니까.

 

p.86) 결혼 안 한 나를 두고 무슨 결격 사유가 있다는 양 비아냥거리거나 내가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둘 말고도 많았다. 백번 양보해서 그게 사실이라 쳐도 그런 얘기를 사람 앞에다 두고 할 수 있는 무례함이 놀랍고, 그런 무례한 사람들도 결혼을 했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p.87) 나만이 아는 나의 길고 다채로운 역사 속에서 나는 남의 입으로 함부로 요약될 수 없는 사람이며, 미안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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