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도 마법소녀가 될 수 있고 그 사실에 만족하기를. 당신은 종말론만 있고 맞서 싸울 이는 없는 이 암울한 세계를 밝힐 촛불이다.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 168p
조건에 따라 여자들이 능력을 각성하는 세계. 거기에는 마법소녀가 있고 대한민국에는 그들을 관리하는 지부가 있다. 그런 특별한 자들이 판을 치는 곳에서 주인공은 리볼빙으로 늘어난 카드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 그의 앞에 예언의 마법소녀가 나타나 말한다. 당신은 특별한 마법소녀라고, 지구에 닥칠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박서련 작가의 책은 더 셜리 클럽 이후 1년만이다. 한 커뮤니티에서 많은 이들의 추천을 보고 빌려봤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고 완독은 했으나 무심하게 덮은 기억이 있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는 아는 지인이 내가 좋아할 거 같다며 추천해준 책으로, 나 역시도 '마법소녀'라는 제목에 크게 끌렸기 때문에 기대했던 바가 컸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다지 큰 울림을 받지 못했다. 여러 소재나 그를 뒷받침하는 곁가지들은 내 취향이 확실했으나, 등장인물의 관계나 이야기의 깊이가 너무 얕아 발목에 닿을까말까한 깊이의 시냇물을 차박차박 걷다 큰 바다를 마주하지도 못한 채 끝난 기분이었다. 지구에 닥칠 재앙과 그 징조의 정체, 그리고 이 소재에 함의된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도 좋았지만 그게 단점을 상쇄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쉬운 작품으로 남았다. 이쯤되면 이 작가와 안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p.15) 사람이 살아 있는 데에는 돈이 들어……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아.
p.83) 이번에야말로 내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된 줄 알았는데, 단순한 쓸모를 넘어 너무도 중요하고 유일해서 대체불가한 존재가 된 줄 알았는데. 내가 시간의 마법소녀일지도 모른다는 걸 의심조차 하지 않았는데.
모든 걸 망친 건 아로아가 아니라 나였다.
p.166) 스물아홉에도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면 시계 디자이너가 되기에 늦은 나이도 딱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