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혐오의 세상에서 한 인간의 탄생은 '잼민이'를 거쳐 '꼰대'로 살다 '틀딱'이란 소리를 들으며 막을 내린다. 이만큼이나 혐오가 쉽다.
SNS는 참 장단점이 뚜렷하다. 자극적이고 거짓된 정보가 판을 치지만 좋은 책이나 영화를 추천받고 싶을 때는 이만한 게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번에도 트위터에서 알티를 타 보게 된 책. '성숙한 어른이라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언어필터링'이라는 말이 유달리 크게 다가와 이 책을 골랐다.
요즘 세상은 많이 천박해졌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이나 현실에서나 행동과 말을 막 하고 진지한 조언을 거부하며 자극만 쫓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런 건 또 쉽게 옮는지라, 마치 유행하는 바이러스마냥 여기저기 퍼지고 그게 위트있고 재치있는 것마냥 유행을 타는 세상. 이런 시류에서 살아남아보고자 내 자신을 많이 검열하지만, 나또한 사람인지라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누군가를 상처줄 때가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말들을 한 곳에 정리했다. 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편, 본래 알고 있던 단어 또한 있었는데 역시 두루뭉실하게 생각으로 남기는 편보다는 글로 정리한 것이 체감이 잘 되는구나 생각했다. 나 또한 무심결에라도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기에, 이제부터라도 혐오의 말을 줄이고, 책 내용을 상기하며 그 말을 뱉은 사람을 지적해볼까한다.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당신의 문장은 독백이나 혼잣말로 남겨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문장을 대화로 완성해준 이에게 듣는 불편까지 감수하라는 건, 다소 무책임하고 나태한 태도이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니라 백 명, 혹은 수천 명, 한 국가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일해야 한다면, 당연히 상당수가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단어로 말하는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 발화 속 메시지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듣는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화자가 한 번 더 생각을 거치는 것으로 청자가 편할 수 있다면 그 번거로움은 감수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p.7
자신의 무례를 인지하는 사람은 남의 마음에 대형 사고를 치지 않는다. 차별 단어를 애용하는 모난 습관을 버리기만 해도, 안전한 대화가 가능하다. 더불어 나도 잘해야 하겠지만, 남과 함께 잘해야 언어의 사고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 이건 많은 이들이 함께할수록 좋다. 차별 단어에 불편한 사람이 늘어날수록, 차별에 불편한 사람은 줄어드니까. 그리하여 모두가 불편해할수록 단 한 명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불편이 만드는 편안을 다 함께 느낄 수 있길 바라며. /p.9
즉 우리가 갓 무언가를 시작한 어리숙한 어른을 데려다 '어린이'에 비유하는 행위는 은연중에 '어른은 항시 성숙하고, 어린이란 그와 반대로 덜 자란 어른에 불과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 모두가 어린이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외치더라도, 실제로 우리가 뱉는 언어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이다. /p.17
우주처럼 풍부한 어린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작고, 귀엽고, 미숙한 존재로 대상화할수록 고독해지는 자는 어른이다. 반대 선상에 놓인 이들을 두어다 한쪽은 미숙하고 한쪽은 성숙하다 일컫으니, 과거보다 완성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어른의 부담감만 늘어날 뿐이었다. /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