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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NUT BUTTER/글

【221103】노랜드

 

오고있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모든 걸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선란 작가님의 신작, '노랜드'. 총 10편의 단편을 묶어 낸 단편집이다. 단편집은 다 좋지만, 완독 후에는 유달리 인상깊게 본 몇 작품만 기억에 남는 점이 참 아쉽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이라 이번에는 다를까 했는데 아쉽게도 내 기억력은 그런 걸 판가름하지 못하나보다. 

 

 10개의 단편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별'과 접목돼있다. 그게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무언가와 '이별'하거나 해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은 이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거나 진실을 마주한다. 이별이 왔을 때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각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선택을 했기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이름 없는 몸과 우주를 날아가는 새. 아무래도 나는 사랑(포괄적 의미)이 확실히 드러나는 게 좋은가보다. 특히 이름 없는 몸은 시골에 사는 한 총각에게 시집 온 베트남 여성과 그 자녀를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중간에 잘 못보는 묘사가 있어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서도.

 

 후기에는 이유없이 살아가자는 말을 너무 길게 한 것 같다는데, 삶의 이유를 계속 찾는 나에게는 그 긴 이야기들이 좋았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문체로 볼 수 있어 영광이다. 앞으로도 천선란 작가님이 그려낼 행복과 사랑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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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는 것도, 그리운 것도, 찾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증오하는 것도 아닌 마음. 설명할 수도 표현할 방법도 없는 마음. - 28p

 

 

 사람들은 나열된 우리 모습만 보고 불쌍한 인생이라고 생각할 거 아냐. 그게 아니라는 거, 우리한테도 우리의 삶이 있고 우리가 택한 삶이고 내 인생 멋지다는 거 보여줘야지. -50p

 

 "하지만 아직 마지막은 오지 않았잖아요. 동생이 살아만 있어준다면 괴물이 되어도 좋고 우주에 나가도 좋아요. 허락했을 거예요. 적어도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동생이 있다는 거니까. 보이지는 않겠지만요. 그렇게라도 살아만 있어주면 됐어요. 어떤 모습으로든, 어디에서든." -54p

 

저는 인간이 바키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두 번 다시 어떤 것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79p

 

 [함장님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때때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앗아갑니다.] -104p

 

 "떠나야 하고 소멸되어야 할 인간을 계속 붙들고 있는 건 가장 잔인한 일이야. 그런 식으로 이별을 미뤄봤자 영원히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물론 떠나는 사람은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그러니까 푸코, 너는 보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보내줘. 그게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거니까." -116p

 

 선이 전부 말해주었다. 선은 나를 나로 보는 사람이었다. 내가 정말 존재하지 않았다면 선은 나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 160p

 

 나는 왜, 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왜 내게 공간을 내어주느냐고. 그러자 언니는 하나의 세계를 붕괴시키려면 하루빨리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야 하고, 그 세계는 사람과 사람이 만낫을 때에 만들어지므로 네가 살아온 세계가 빨리 붕괴되기를 원해서 그런다고 대답했다. -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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