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출혈, 뇌종양, 뇌졸중, 심장마비… 누구나 몸이 보내는 사소한 신호를 눈치채지 못하면 단숨에 목숨을 앗아가는 이 병들을 무서워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사람의 사인이 심장마비였다는 걸 안 이후에는 더더욱 이런 병들이 무서웠다. 어제까지만해도 건강해보였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런 질환을 알아보고 탐색하여 대비할 시간은 갖지 않았다. 미지의 공포는 미지로 두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나는 아직 이런 일을 겪기에는 어리다는 안일함 때문일까. 사실 이 책도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산 게 아니라 SNS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길래 구매했다가 한참이나 묵혀뒀다. 지금은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는 저자이자 뇌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가 37세에 맞이한 뇌졸중으로 인해 자신의 뇌가 무너지는 광경을 목도하고 8년의 회복 기간을 거치며 느낀 바를 서술한 에세이다. 사실 이런 과학 분야 책을 제대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읽는 내내 국어 모의고사 비문학을 보던 학창시절이 떠올라 이쯤이면 책을 잘 읽는 거 아닐까 자부하던 나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어줬다. 어려운 책은 아니다. 다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생소한 단어들이 꽤 많이 나온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이런 용어들을 서슴없이 뱉을 정도의 지식인이 뇌 혈관이 터졌다고 도움을 청하기까지 오래걸리고 수술 후에도 갓난아기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배웠다는 점이 말이다. 처음에 저자가 뇌졸중에 걸렸을 때 한 생각들이 크리피했기에 아무 생각없이 '이과생들은 전부 이런 걸까'하며 경악과 감탄이 섞인 시선으로 봤는데, 그 생각의 나열들이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진리에 집중할 수 없게끔 하는 걸 보고 소름이 끼쳤다. 책의 첫 페이지 쯤에 뇌졸중에 걸린 사람이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죽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며 미리 고지했는데 그게 도움을 청해야한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다니. 내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것들을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한다는 점이나 그렇게 회복을 해도 뇌질환이 걸리기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거라는 점보다 도움 자체를 요청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 정말 무서웠다. 저자가 숫자를 애써 기억한 다음 겨우겨우 수화기를 들어 "나는 질이야. 살려줘!" 라고 외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이런식으로 저자는 뇌졸중에 걸린 사람이 왜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지, 주위 사람들은 뇌졸중에 걸린 사람을 어떻게 돌봐야하는지 한권의 책으로 보여준다. 보면서 느낀 점도 많았고 무서운 점도 많았다. 저자가 뇌질환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뇌를 향한 사랑도 있겠지만(지금봐도 와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라는 부분은 여전히 경이롭다) 저자와 어머니가 긍정적인 마인드로 회복을 향해 계속 나아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내가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볼 줄 알아야 다음에 무엇을 할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절망이 회복을 가로막는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언어 능력을 잃든 아니든, 나는 여전히 나이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지만 터무니없는 목표는 아니었다.', '내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달려있다' 라는 구절은 딱히 뇌졸중에 걸리지는 않았더라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조금 생소하고 어려웠지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우리 몸이 단순하지 않음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내 몸을 위해 힘내고 있고 그러니 모든 것을 잃어도 다시 원궤도로 돌릴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완독한 지금도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이렇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는 뇌졸중에 걸리고 희망을 봤다는데 아직 내 입장에서는 절망이 앞선다. 그렇지만 언제 누가 맞이할지도 모르는 일, 이런식으로나마 조금씩 알아가고 배워나가야겠지. 책 뒤편에 있는 뇌졸중 위험신호와 자가진단법은 꽤나 많은 도움이 될 거 같다. 여러모로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