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문학 속에 길이 있다면 그건 매끈한 표면에 그어진 표식으로서의 선이 아니라 우묵하게 파인 깊이를 가진 공간일 겁니다. 신문의 단신 한 줄, 거리에서 들은 한 마디 말, 사진 한 장, 한 조각의 꿈과 기억과 예감에서도 문학은 시작되고, 납작하게만 보이던 사건들과 사물들과 인물들 속에서 불꽃과 깊이와 내부를 상상하고 발견해내니까요. 그 깊이 아래에서 깨어남의 순간이 전기 스파크처럼 튀어 빛날 때, 읽고 있는 우리들의 내면에도 생명의 전류가 옮겨 흐르게 됩니다. 그 생명의 힘으로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새로운 우묵한 길이, 어떤 새로운 태도가 생겨나는 그 순간, 우리 삶은 미세하게 또는 결정적으로 변화하고 그 책을 읽기 전의 자신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깊이 없는 표면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혐오와 차별, 편견과 폭력을 향해 미끄러지는지 우리는 목격하고 경험해 왔습니다. 문학을 읽으며 우리 내면에 생겨나는 우묵한 길의 깊이는 그 미끄러짐에 힘껏 브레이크를 겁니다. 때로 우리가 절망과 환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빠져들 때도 그 울퉁불퉁한 내면의 길은 체념의 유속을 늦추고 문득 방향을 틀어 줍니다.
잃고 싶지 않은 가치가 위협받을 때에는 그걸 지키기 위해 때로 연대하기도 합니다. 이 행성에 깃들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의 운명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게 된 지금, 그 각성과 연결을 더 깊은 것으로, 더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드는 문학의 힘을, 그 힘이 우리를 밀고 나아가는 길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