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를 전부 정주행 한 후 딱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 고른 스탠바이 웬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웬디가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여정을 다룬다. 스타트렉과 연관성이 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른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좋아서 시기를 잘 골랐구나 싶었다. 역시 이번에도 수요일 밤에는 시네마의 일원인 볼디님과 함께했다.
영화 초반부 쯤 볼디님이 빨강과 파랑이 계속 함께 나오는데 이게 무슨 의미일까 여쭤보셨다. 처음에는 대조색을 그냥 쓴 걸까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별의 표면온도가 제일 높으면 청색, 제일 낮으면 적색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스타트렉의 특성을 생각하여 별의 표면온도를 이용해 웬디가 관심을 두는 것과 두지 않는 것을 색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 그리 생각하며 보니 색이 주는 의미가 더 뜻깊었다.
이와같이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스타트렉을 이용한 연출이 펼쳐진다. 웬디가 작품을 내는 시나리오 공모전 이름이 용감한 걸음인 것. 반은 외계인, 반은 인간이라 감정 처리를 어려워하는 스팍을 웬디의 페르소나로 이용한 것. 미지의 세계를 뚫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웬디의 여정을 스타트렉의 한 장면을 이용해 보여준 것이나, 웬디의 시나리오 지문을 나레이션으로 읊어주며 감정 묘사를 한 것. "함장님,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라는 대사로 웬디가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웬디가 자신의 넘쳐흐르는 감정을 다스리는 다스리는 주문이 스타트렉에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전 대기명령으로 표현하는 스탠바이인 점 등. 이런 연출을 적절하게 잘 녹여내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웠다. 작중내내 모든 차별을 없애는 스타트렉 정신을 잇고 있었고, 그를 표현하고 있었다. 웬디의 언니를 맡은 배우분이 스타트렉 다크니스에 나오는 캐롤인 점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는데 이 점들을 감안하여 볼 때 이 작품은 스타트렉을 향한 훌륭한 찬사 아닐까.
마지막 부분에 웬디는 자신이 적은 스크립트를 읊으며 스팍을 자신으로, 커크를 언니로 표현하고는 "스팍은 마지막으로 친구의 눈을 바라봤다. 커크는 이제 스팍을 놔줘야 할 때란 걸 안다. 그가 인간의 심장을 찾도록. 끝. 에필로그, 모든 건 괜찮아질 것이다…(생략)"라고 말한다. 웬디에게 이 여정은 자신의 시나리오를 내기 위한 길이자 자신은 홀로 설 수 있는 인간이며 독자적 객체라는 것을 증명하는 통로였다. 자신을 아직도 돌봐줘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언니에게 자신은 루비의 훌륭한 이모인 걸 알려주는 길. 여태까지 지켜왔던 많은 원칙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 기어코 성취하는 스토리는 볼디님의 말씀처럼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빙 둘러온 여정일지도 모른다. 성공 그 자체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그 외에도 세상에는 나쁜 사람만큼 좋은 사람 또한 있다는 걸 보여줘서 좋았다. 최근에 오은영 선생님의 금쪽 상담소에서 말하길, 아이에게 좋은 사람만큼 나쁜 사람도 있지만 살다보면 나쁜 사람을 만날 기회는 적다고 꼭 알려줘야한다고 했는데 괜시리 그 구절이 생각났다.
볼디님은 '상업적으로 쓰여지고 상업적으로 굴러가는 작품이어도 누군가 한명쯤은 그 내용을 계기로 삶을 바라볼 관점이 확립될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하셨다. 말씀대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작품을 만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란다. 우리는 어쩌면 "현실과 가상은 구별한다"는 말 뒤에 숨어 많은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 보이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많은 창작자들이 다시 한 번 자신의 작품이 끼칠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