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츠미게 밀기 두번째 포켓몬스터 실드. 사실 그 전 시리즈인 울트라 썬문과 오루알사를 하다가 말았음에도 다시 할 마음이 나지 않는지라 이제 포켓몬스터 시리즈로 감동과 재미를 느끼기 힘들구나 판단, 발매 전 평도 안 좋길래 그냥 4세대 리메이크를 기다리겠다는 마음으로 넘겼는데 어느날 언니가 유튜버 방송을 보고 재밌을 거 같다며 사왔다(그리고 그렇게 고대하던 4세대 리메이크는 실망만 안겨줬다). 그 김에 겸사겸사 해봤는데… 오?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었다.
일단 편의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굳이 포켓몬 센터로 안 가도 포켓몬 박스를 열 수 있다는 점이나 비전 머신으로 분류되던 풀베기, 공중날기, 파도타기 등이 없어져 스토리 엔트리를 내 마음대로 짤 수 있었던 점이나… 대신 갈 수 없는 길을 엑스트라들로 막아놨지만 이 두가지가 크게 개선돼 하는 데 불편한 점이 없었다. 전투에서 이기면 선두에 있는 포켓몬 말고 다른 포켓몬들도 조금이나마 경험치를 얻어 원활한 육성을 할 수 있는 건 덤. 기존 공중날기는 마을로만 이동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이번 작에서는 도로같은 곳에도 갈 수 있어 이동하는데 편리했다.
개선된 그래픽은 말할 것도 없다. 처음에는 젤다 야숨 같은 그래픽을 기대한 사람들의 실망한 목소리가 많았으나 직접 플레이해보니 이래저래 그래픽 면으로 엄청 신경쓴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적절한 카메라 각도 변화와 마을 컨셉에 따른 건물들,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사람들… 물론 전작에 비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이 적고, 들어가면 거진 대부분 다 똑같은 방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발전된 그래픽에 비해 NPC의 움직임이 단순하게 직선 방향 -> 회전 -> 직선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쉽기는 했다. 이게 인물 같이 비교적 작은 오브젝트면 크게 티가 안 나는데 자시안과 자마젠타 같이 큰 오브젝트는 티가 너무 나는지라 그 점은 더 개선돼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외에는 괜찮았다. 오히려 포켓몬스터 게임 자체가 가야하는 길이 정해져있고 순서도 정해져있어 젤다처럼 오픈월드 형으로 나오면 길치인 사람들은 정해진 출구를 찾느라 고생하겠구나 싶었다. 그 예로 길치 방향치인 나로서는 길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고 나온 곳으로 들어가고… 아직도 와일드 에리어 길을 모른다.
스토리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겠다 싶었다. 포켓몬스터 시리즈 주인공들의 나이대를 감안하면 큰 일에 어른들이 나서는 게 맞지만 이게 한편으로는 플레이어들을 스토리에서 배제하는 느낌이 강했다. 마지막 즈음에는 갑자기 무한다이노를 잡으라고 하는데 이게 뭔지 정확히 설명도 안 해줘서 그냥 잡았다. 어른들이 그렇게 나서되, 전에 무슨 일로 자신들이 출동해야됐는지 중간중간 말해주고 플레이어들이 모르고 한 행동이 어른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식으로 가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반대로 리드 카드를 통해 NPC들의 뒷사정을 알려준 건 좋았다. 사실 여태까지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챔피언이라는 자리를 게임상의 목표라고만 인지했지 큰 책임감이나 성취감은 느끼지 못했는데 챔피언인 형을 목표로 하는 소꿉친구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라이벌, 자신의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 챔피언을 목표로하는 라이벌 등 각자의 서사를 통해 그들에게서 승리하고 얻은 챔피언의 자리가 얼마나 값진지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듯했다. 메인 스토리가 끝난 후, 목표를 잃은 채 홀로 동떨어진 느낌을 받은 호브와 페어리 관장을 맡은 비트, 그리고 오빠에 이어 악타입 관장을 맡은 마리의 성장을 보여줌으로서 그들의 서사도 잘 마무리 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갓겜이라고 칭송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발매 전 나왔던 모멸찬 시선을 받을 만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는 내내 남의 생각에 편승하지 말고 뭐든 경험해보는 것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취향과 줏대를 구축해나가는 길이라 느꼈다. 우리는 남의 평가에 휘둘려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걸까. 이게 참 머리로는 알아도 실천하기가 어렵다.
갑옷섬은 일찍 가는 게 여러모로 좋다는 조언을 얻어서 스토리 도중에 다 깼고, 남은 컨텐츠가 배틀타워와 얼음왕국 뿐인데 배틀타워 식의 컨텐츠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라 선뜻 하기가 어렵다(얼음 왕국은 귀찮다). 일단 다른 츠미게를 하다가 생각이 나면 시도해볼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