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도 더 된 작품임에도 여전히 명작이라고 칭송받는 애니 중 하나인 오란고교 사교클럽. 부잣집 자제들만 입학할 수 있는 오란 고교에 특별 대우 장학생으로 입학한 서민 하루히가 오란고교 사교클럽의 일원이 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다룬다. 한창 이 애니가 인기를 끌고 있을 때 투니버스가 '오란고교 사교클럽'이라는 제목으로 들여와 많은 오타쿠들의 분노를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원 제목은 오란고교 호스트부) 지금 생각해보면 잘했구나싶다.
호스트부를 사교클럽으로 번안했듯, 자막도 나름대로 신경 써 번역한 티가 보였다. 캐릭터는 분명 호스트가 되고싶다고 하고 있는데 자막은 멋진 남자가 되고싶다고 하는 등, 지금 시대의 가치관을 많이 반영한 것 같았다(9화에 나왔다던 문제의 하일 즈카부도 뺀 거 같았다. 그러나 내가 이걸 다른 일과 병행하며 틀어놓은지라 확실하지 않을 수 있음). 이런 번역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10년도 더 됐는지라 쎄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예시는 많지만 일단 동성을 사랑하지 않는 여성은 남성과 남성의 금단의 향기가 느껴지는 사랑(소위 BL로 치부되는 것들)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는 정서가 너무 많이 깔려있어서 괴로웠다. 이건 아마 내가 여성 오타쿠로 살아오면서 BL를 좋아할거라는 편견에 화를 당한 적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명작이라고 회자되는 이유는 연출의 탓이 크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주워들었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을 수 있음) 제작할 당시 예산을 적게 받았는데 그걸 메우려고 하다보니 이런 연출이 나왔다는 말이 있다. 그걸 알고 보면 한 컷이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기만 하거나 몸은 그대로 두고 팔다리만 움직인다거나하는 등 정작 작품 내 캐릭터들의 동세가 엄청 적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움직임을 연출과 카메라 전환으로 메꾸다니… 특히 1화의 전구, 이상한 나라의 하루히, 쌍둥이가 연 문, 언젠가 호박이 되는 날까지, 그리고 쿄우야는 만났다, 이것이 우리들의 오란제는 길이길이 회자될만하다.
남자와 여자에게 부여된 성고정관념 대사가 많이 나오지만 연출에서부터 캐릭터들의 관계성, 섬세한 심리묘사, OST, 오프닝과 엔딩곡까지 뭣하나 빠지지 않는 애니였다. 심지어 마지막 부분은 오리지널 전개라던데 비판을 받기 쉬운 오리지널 전개치고는 현재까지도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정말 본즈가 만든 명작 중 하나라는 말이 손색이 없을 정도다. 뭣보다 하루히가 너무 좋았다…. 지분(自分)이라는 1인칭도, 언제나 침착한 모습도,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도…… 옆자리 괴물군의 미즈타니 시즈쿠와 같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눈치가 빠르지만 연애쪽으로는 그 눈치가 발휘되지 않는 특성의 여주인공은 언제나 옳다. 다른 여주인공도 좋지만 이런 여주인공도 많이 나왔음 좋겠다. 날 위해